지고의 것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 극단 몬스트러스 레먼트와 말레우스 말레피카룸



1975년 8월 14일의 오후, 기이한 폭풍우가 런던 북부의 작은 지역을 덮쳤다. 3시간 동안 비가 내리퍼부었다. 지하가 침수됨에 따라 수백 명이 집을 잃었고, 구명정과 노가 달린 배들이 가스펠 오크에 발이 묶인 사람들을 구조하고 있었다. 8월 14일의 오후는, 또한 불만 가득하고 신물이 난 여배우들과 음악인 몇몇이 모여 음악 극단을 만들어 볼까 하고 만나려던 날이기도 했다. 만남은 가스펠 오크에서 예정되어 있었다. 수위가 점차 높아졌고, 폭풍우가 본격적으로 덮치기 전에 도착했던 한두 명의 사람들은 뒷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빗물을 막기 위해 정원의 막힌 하수구를 뚫어야만 했으므로, 우리는 이 만남이 취소될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그런 일은 없었다. 늦은 오후와 이른 저녁 사이에, 하나둘씩, 그들은 나타났다: 흙탕물에 후줄근하게 젖은 채로. 우리는 환호로 맞이하면서, 이것이 놀랍도록 상서로운 조짐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극단이 자립하는 데는 또 다른 8달이 걸렸다. 첫 번째 프로덕션을 시작하기 전까지 원래의 구성원 중 누군가 나가고 또 다른 이들이 들어왔지만, 극단의 신화 속에서 그 폭풍의 오후는 언제 나 몬스트러스 레지먼트의 시작이었다.


1975년 순회 극단 몬스트러스 레지먼트를 공동 창립하여 15년간 운영해 온 배우이자 번역가 질리언 한나(Gillian Hanna)는 1991년 <몬스트러스 레지먼트: 4개의 극과 집단 제전>을 집필한다. 위의 글은 책에 “폭풍의 오후”라는 제목으로 실린 짧은 일기로, 폭풍우를 뚫고 만난 이들이 처음 극단을 만든 날을 상기하고 있다. 

당대의 여러 대안 극단 중에서도 강경한 사회주의적 여성주의 노선을 고수하였던 몬스트러스 레지먼트의 극단명은 16세기 스코틀랜드의 신학자였던 존 녹스가 16세기 발간한 소책자의 제목인, ‘괴물 같은 여성 정권에 대한 첫 번째 나팔 소리’로부터 인용한 것이다. 녹스는 가톨릭 국가인 프랑스의 세자와 결혼한 메리 스튜어트 여왕의 정권을 ‘괴수’에 빗대며 다음과 같이 썼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가장 존경을 받아온 저자들의 지혜에 의해 조명된 규칙과 법령에 따르면, (여인들의 지배는) 자연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율법에 역행하는 것임이 분명하게 밝혀지고 있다. (..)여인이 국가와 제국을 손아귀에 넣고 남성을 지배하거나 국가, 영지, 지방, 도시의 통치자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지 않고는 행해질 수 없는 일이다. (..) 그러므로 모든 남자들은 이제 나팔 소리가 한 번 울렸다는 사실을 명심할지어다.


400년 묵은 녹스의 강령을 배후에 둔 채 시작된 극단 몬스트러스 레지먼트는 1993년 영국 왕립학술회가 지원을 중단할 때까지 18년에 걸쳐 30여 편의 공연을 제작, 상연했다. 몬스트러스 레지먼트는 작가, 배우, 연 출가 등으로 위계화된 기존의 제작 체계 대신 공동 창작의 방식을 도입하였다. 예를 들어 극작가의 초안을 리허설 하는 과정에서 배우가 특정 연출의 변형, 추가 혹은 삭제를 요청하는 일이 가능했다. 

처칠은 몬스트러스 레지먼트보다 1년 앞서 창단된 극단 조인트 스톡(Joint Stock)의 일원이기도 하였다. 조인트 스톡 또한 작품의 제작과 상연에서 공동 창작의 방식을 도입했던 극단이었다. 이처럼 70년대 초중반 창설되기 시작한 일련의 대안 극단은, 68혁명 이후 유럽의 사회 문화적 맥락 속에서, 대처 집권 하에서 구 식민지 영토의 유색 인종을 배제한 채 영국의 정체성을 재구성하고자 하였던 70년대의 보수적 쇼비니즘에 대항했다.

처칠은 1975년 몬스트러스 레지먼트와 <비네가 탐(Vinegar Tom)>을 협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음악극 형식을 실험하기 시작했다. <비네가 탐>의 마지막 21장에서 처칠은 중세 시대 이른바 ‘마녀 칙서’로 통용되었던 ‘말레우스 말레피카룸(Malleus Maleficarum)’의 두 저자 하인리히 크레머와 제이콥 스프렝거가 나누었을법한 가상의 대화를 재구성한다. 이를 통해 처칠은 두 신학자가 믿어 의심치 않는‘마녀’ 라는 개념과 그것이 지시하는 바가, 여성이라는 성 일반에 대한 편견을 통해 자신들의 기득권 남성성을 유지하던 뿌리 깊은 여성 혐오의 한 전형임을 보여준다. <지고의 것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는 당시 교황이 두 신학자에게 공식적으로 말레우스 말레피카룸의 내용을 인정한다는 내용을 담은 칙서의 이름이다. / 20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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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외신용협력스크리닝. 2018년 1월. 홍익대학교 U동 지하


시점과 관계를 잇는 연결통로


(    ) 안에서 열린 여성주의 책방 <신용과 협력>

시각문화, 예술철학 관련 서적을 아카이빙하고 렉처 퍼포먼스 등을 통해 ‘읽기’의 여러 방식을 실험하는 ‘연결통로’는 홍익대학교 문헌관 건물의 실기실 사이에 있다. 이곳은 각종 미술 작업 재료들이 잔뜩 쌓여있는 데다가 증축과 리노베이션으로 복잡하게 얽혀있어 어릴 적 아지트를 연상시킨다. 최보련 작가를 포함한 ‘연결통로’의 구성원들은 실기실에 패널과 문을 달아 더 작게 나눈 것뿐인 이곳을 책방으로 바꾸었다. 용도가 변경되면서 이곳은 일시적으로 학생이 아닌 ‘관계자 외’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는 다른 의미에서의 ‘사이’ 공간으로 바뀌었다.


최보련 작가는 2015 년 이후 급속도로 확산된 넷-페미니즘의 영향으로 여러 분야의 페미니즘 서적이 번역 및 출간 되고 있는 현재의 타임 라인을 이 책방에 끌어들였다. 이론서, 철학서 및 여성주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는 문학작품까지 포괄하여 서른 권 남짓의 페미니즘 관련 서적 리스트를 만들었고, 누구나 5시 이후 대여 및 열람이 가능하며 최대 5일 까지 대여가 가능하다. 책이 진열된 작은 선반은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형 이젤, 캔버스 더미, 벽에 붙은 포스터와 스티커들 사이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조금 더 세밀하게 짚어보자면 2016년 하반기에 문화•예술계 내에서 불거진 성폭력 사건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아지트로서의 역할도 기대할 수 있었다. 기대는 신용에서 비롯된다. 대여장부에 인적 정보를 적고, 책을 골라 페이지를 펼쳐 문장을 읽어 나가는 짧게는 5분, 길게는 5일 동안 지속될 수 있는 신용. 최보련 작가는 인터뷰에서 ‘신용과 협력을 확인할 수 있었던 에피소드가 딱히 없었다’라고 언급했지만, 이 마이크로 아카이빙은 현 페미니즘의 사유와 성찰을 이어가는 협력의 시간을 포함한다.


(   ) 밖에서 열린 <교외 신용 협력 스크리닝>

최보련 작가의 두 번째 프로젝트 제목에는 신용과 협력 앞에 중심의 변두리를 뜻하는 ‘교외(郊外)’가 붙었다. 6명의 작가가 만든 13편의 짧은 영상들은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서로가 협력하여 제작하는, 혹은 할 수밖에 없는 단계의 가난한 영상 제작자들을 위한 행사’이다. 제작 과정에서 제작자, 스텝, 배우의 역할을 번갈아 맡았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배우를 겸하면서 스태프로 활약하고, 또 동시에 관람객이 되기도 했던 이들의 상황이 프로젝트 제목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여유롭게 작업할 수 없다는 불가피한 현실을 가늠케 하지만, 제작에 필요한 수고를 나누는 신뢰감도 분명 느껴진다. 또한 행사는 서교예술실험센터 1층에서 진행되었는데, 문득 학교 밖(교외(校外))으로서의 장소성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실제로 작가는 개인전이 아닌 여러 명의 참여자가 있는 행사를 기획한 이유가 ‘관람객들이 동년대 작가들의 좋은 작업을 함께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었다’라고 언급하였고, 그런 의미에서 센터는 교내에서 벗어나 여러 동료의 작업과 활동을 모을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스크리닝한 영상의 대부분은 예술계나 사회, 국가를 불신하고 비판하는 관점이 드러난다. 예술계에서 반복하는 예술 언어를 조롱하고, 정부가 내거는 공약과 선언을 최면술로 만들어버린다. 구토하고 자조하며 나를 좇거나 숨긴다. 그렇다면 교외(敎外), 다시 말해 종교와 이념으로부터 빠져 나온 (혹은 도망친) 세상은 어떨까? 조은아 작가의 작업에서는 귀여움으로 무장한 개와 핑크 돌고래가 뛰논다. 김한소휘와 주박한별 작가는 부인할 수 없는 오타쿠 취향을 드러냈고, 박서하 작가는 쓸모를 알 수 없는 콜라의 요정을 소개했다. 이렇듯 세상의 안팎을 관찰하는 작가들의 태도와 시점은 만화경이 되어 ‘지고의 가치’를 좇는 이들의 맹목성을 부인하고 대의를 의심한다.


신용과 협력의 유통기한

예술계 안에서 ‘신용’과 ‘협력’의 유통기한은 누가, 언제, 어떻게 정할까? “이번 작품에 함께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함께 해요. 반가웠습니다.”라며 대화를 주고 받을 때 상대방의 눈빛이 어떠했는지, 다음의 시기가 언제인지, 어떻게 연락을 이어갈지 고민하는 과정은 피곤할 만큼 반복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최보련 작가가 진행한 페미니즘 책방 운영과 스텝, 배우, 디렉터의 역할을 바꿔 제작한 영상 스크리닝 프로젝트는 예술계 내 자신의 관계망을 실험하고, 기록할 수 있는 장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 프로젝트를 만들거나 참여한 사람들과의 신용과 협력의 유통기한은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기도 하다. 페미니즘 텍스트를 함께 읽으며 각자의 시점을 나누고, 서로의 작업에 조언하고 힘을 보태는 관계는 이미 프로젝트를 통해 충실히 아카이빙 되었다. 장소의 본래 용도가 바뀌면서 작가의 소위 ‘예술계’ 내 신분은 드러나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워진다. 참여한 작가들의 상황과 현실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넓게는 세계를 바라보는 시점 역시 변할 수 있음을 예고한다. 진열한 책은 없어지지 않았고 영상의 엔딩크레딧에 오타도 없었다. 적어도 이곳과 이 시간 안에서 누군가의 타자는 없었다.



* 지고의 것을 추구하는 이들에게(Summis desiderantes):  1484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8세가 마녀를 색출하기 위해 내린 대칙서(大勅書)



서교예술실험센터 4기 공동운영단 봄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