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 유>: 심성 분류학의 역사
1.
당신의 손에 감광저항(photoresistor)이 놓여있다면, 당신은 이것을 이용하여 빛이 존재하면 모터를 작동시키는 빛 감지 장치를 만들 수도 있고, 반대로 광원이 사라지면 소리를 지르는 어둠 감지 장치를 만들 수도 있다. 요컨대 하나의 부품이 어떤 목적에 복무할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에 따라, 동일한 회로에 다른 이름을 붙일 수 있다. ‘거짓말 탐지기’를 ‘진실 탐지기’라고 바꾸어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두 장치의 근본적인 작동 원리는 동일하다. 단지 거짓말 탐지기가 동요와 불안을 거짓말의 증거로 여긴다면, 진실 탐지기는 평온함과 무관심을 진실의 징표로 삼는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진실 탐지기는 동요 없음, 그리고 공감의 부재로 특징지어지는 ‘반사회성 탐지기’로도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은 ‘당신은 사이코패스입니까?’라는 질문과 동일해진다.
영화 <샤레이드(Charade)>에서 오드리 헵번이 “왜 사람들은 항상 거짓말을 하는 거죠?”라고 말하며 훌쩍이는 장면 위로 이른바 ‘탈진실’ 시대의 서막을 알렸던 근래 미디어의 명장면이 교차 편집된다. 2017년 트럼프 당선 당시 “왜 대통령은 대변인에게 거짓말을 시킨 겁니까?”라고 묻는 뉴스 앵커에게 얼떨결에 ‘대체 진실(alternative truth)’이라는 단어를 내뱉은 당시 백악관 선임고문의 흔들리는 눈빛은, 흐느끼는 헵번을 어깨에 묻은 케리 그랜트가 의미심장하게 카메라를 응시할 때쯤 흐르는 서스펜스 효과음과 함께 뒤섞여 변조된다. 약간의 내수성을 위해 영화 <기생충>에 등장하는 졸업장 위조 장면과 현 한국 영부인의 석사 학위 논문과 관련된 뉴스 클립이 더해진다. 이로써 렉처 퍼포먼스라는 장르를 표방하는 이 공연이 우리에게 제안하려는 ‘교육 용역’이 진실과 거짓의 판별 가능성을 둘러싼 어떤 교착 상태와 관련되어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그중에서도 공연은 사실이 아니라 진실, 그중에서도 객관적인 사실의 자리를 대체한 주범으로 지목되곤 했던 감정적, 정동적 진실에 초점을 맞춘다. ‘당신이 구글을 검색할 때, 구글은 당신을 검색한다’는 새삼스러운 모토 아래 설립된 구글 대학교의 감성 분석학과 교수이자 감성 컴퓨팅(affective computing)의 전문가로 스스로를 소개하는 크리스티안 퀼(Christiane Kühl)은 공연의 초점을 지리한 정치적 진실 공방으로부터 타인의 마음에 관한 문제로 옮겨간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어느 디자인 대학원의 허접한 석사 논문의 표절 여부가 아니라, 어떤 것을 사실로 믿게끔 하는 심성의 시스템이라는 사실을 주지하면서. 퀼은 합리성이라는 신화에 내재한 백인 남성의 패권을 고발하면서, 감성 분석이라는 분야가 자신이 여성이기 때문에, 그리고 분석 대상이 감성이기 때문에 이중의 비웃음을 산 사실을 개탄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실증주의의 신화를 부수는 대신 거기에 올라타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목소리의 톤부터 안면 미세 근육, 나아가 뇌파까지, 포착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신체적 진동의 기록을 총동원한다면, 우리는 마침내 진실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우리를 언제나 바로 그 진실로부터 멀어지게 했던 감정에 관한 진실에 말이다. ‘만약 당신이 마녀라면 물에 뜰 것이고, 아니라면 물에 가라앉을 것이다’. 마녀와 마녀 아닌 자를 모두 죽여야만 끝이 났던 뒤틀린 중세의 실증주의는 마녀가 아니라 합리성을 익사시켰다. 실패한 심성 분류학의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교정의 시도로써 보다 정교하게 거듭난 사전 예측이 사후 검증의 자리를 대신한다. 더 이상 사실은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대상이 아니라, 적극적인 선제 대응을 필요로 하는 동적인 공격 상대로 거듭난다. 테러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바로 그 이유로 언제 어디서든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가능-공격을 예방하기 위한 선제 조치로써 불시 검문, 전면 감시, 유형 분류학이 정당화되기 시작한다.
2.
흔히 거짓말 탐지기로 (잘못) 알려져 있는 폴리그래프(polygraph)는 본래 혈압, 맥박, 호흡 및 피부 전도성 등을 실시간으로 기록하여 피험자의 생리적 변화를 그래프로 표현하는 장치다. 의료적인 목적으로 고안된 이 기록 장치를 경찰 사건의 범죄자 검거에 사용하겠다는 발상은 이탈리아의 범죄학자 세자르 롬브로소(Cesare Lombroso)로부터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범죄학(Criminology)이라는 단어의 창시자이기도 한 롬브로소의 자칭 ‘실증주의’ 범죄학은 정신 질환의 소인이 외모를 통해 판별 가능하다고 여긴 골상학, 그리고 범죄의 격세유전과 같은 유형 분류학을 바탕으로 하였다. 그가 신봉한 범죄에 관한 생물학적 결정론이 파시즘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었음은 물론이다.
초기의 버전으로부터 여러 차례 개정을 거쳤음에도 폴리그래프의 사법적 유효성은 여전히 의심에 부쳐지곤 한다. 이는 기계의 부정확도 및 결함 때문일까? 만약 우리가 폴리그래프의 정확도를 문제 삼으며, 더 나은 기술의 발전이 궁극적으로 거의 완전히 정확한 거짓말 탐지기의 개발로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전히 롬브로소의 전제를 계승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것은 바로 심적인 상태를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지표로 환원할 수 있다고 여기는 물리적 환원주의다. 적합한 기술만 개발되면 궁극적인 거짓말의 탐지(또는 진실 탐지)가 실현될 수 있다는 소망적 사고는 합성술 및 조작술의 전방위적인 발전에 따라 더욱더 절박해진다.
폴리그래프로 상징되는 심성에 관한 물리적 환원주의는 인간을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성을 유지하는 투명한 입출력 메커니즘으로 바라본다. 만약 당신이 한 줌의 생쌀을 씹어 뱉은 그 내용물이 말라있다면, 이는 당신의 입이 긴장으로 인해 건조해졌음을 뜻하고, 그것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거짓말 탐지기에 비하면 소박하기 짝이 없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들 수 있다는 전제 위에 생리적 지표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쌀점은 폴리그래프와 동일한 전제를 공유한다.
크리스 콘덱(Chris kondek)은 고대 쌀점과 진실 판별 어플리케이션의 피험자라는 명목으로 관객의 입과 손을 분주하게 동원하는 가운데 “당신은 사이코패스입니까?”라고 거듭하여 묻는다. 인구의 2%가 사이코패스이기 때문에, 이 공연을 보러 온 관객 중 적어도 1~2명은 사이코패스일 것이라는 ‘통계적’ 사실을 덧붙이면서. 우리는 정규분포곡선의 중간에서 약간 벗어날 뿐 병리적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을 적당히 특별한 심성의 소유자라고 생각하며 안도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적당히 자아감을 충족하지만, 심성 분류의 알고리즘 속에서 도시를 걷는 한 명의 사람은 사이코패스이거나 사이코패스가 아니고, 테러범이거나 테러범이 아니며, 시위 참여자이거나 시위 참여자가 아닐 따름이다. 한 인물이 요주의 인물일 가능성은 확률로 수치화되지만, 이 확률을 구성하는 각각의 지표들은 예/아니오의 이진법에 따른 결과값이다. 당신이 사이코패스일 확률은 낮을 수 있을 지언정, 특정한 순간 비어져나오는 당신의 제스쳐는 100% 사이코패스의 것과 일치한다. 당신조차 모르는 당신의 진면모를 기계는 포착한다.
<트루 유>는 거짓말 탐지기라는 소망적 발상의 완전하게 실현된 현대판 버전으로, 그다지 정확해보이지는 않는 표정 분석 어플리케이션, 그리고 터치패드 위에서 움직이는 손가락의 궤적을 분석하여 대상자가 주어진 질문에 사실을 답하고 있는지 판별한다고 주장하는 의심스러운 스타트업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불길한 것은 ‘시위 장소로 향하는 사람을 추정하는 탐색 알고리즘’이다. 퀼의 연구팀은 단지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표정 뿐 아니라 작은 몸짓과 제스쳐, 심지어 스카프를 두른 미세한 모양새같은 것을 분석함으로써 도시를 걷고 있는 어떤 사람이 그저 근처 마켓에 들리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장소로 향하고 있는지를 분간해내는 기술을 개발해냈다. 그것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이 기술이 개발되자마자, 한 중동 국가에서 기술의 구입에 관심을 보였지만, 퀼은 “민주주의 국가에 기술을 팔고싶다”고 말한다. 마치 기술을 가진 주체가 기술이 사용되는 의도를 결정할 수 있는 것처럼. 그러나 칼 슈미트가 말하듯, 기술의 허무한 중립성에서 관건이 되는 것은 어떤 종류의 정치가 그 기술을 장악할 만큼 충분히 강력한가이다. 공연을 마치며 퀼이 건네는 ‘이제 돌아갈 시간입니다. 어둠 속으로’라는 대사는 우리에게 남겨진 마지막 무기가 ‘발각되지 않음’이라는 네거티브의 전술에 있다고 말하는 듯 하다.
* 이 글은 2022년 11월 옵신 페스티발의 일환으로 아트선재센터에서 상연된 더블럭키프로덕션의 <트루 유>에 대한 리뷰이다. <트루 유>는 2019년 독일 바이마르 초연되었고, 2020년 국내에서 공연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로 취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