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True: do /virga

2020.9.24-10.17, 온수공간


작동 영상: 3settype, fastforest, fastfog

전시에 부친 글

기하급수적 성장을 설명하는 지수 성장 모형은, 신도시가 대도시가 되어 인구 성장이 한계에 이르고, 반도체의 성능이 이전처럼 24개월마다 2배로 개선되지 않는 시점에서 더욱 엄밀한(혹은 절충적인) s자 형태로 수정됩니다. 이 그래프에는 가상의 상한선 K가 설정되고, 그 값에 가까워질수록 성장의 속도가 떨어진다고 보지요. 이렇듯 지수 성장 모형은 현실의 속도와는 다소간 거리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이 시작되고 그 진행이 전례 없는 속도로 가속하는 것을 바라볼 때 언제든지 다시금 동원되고는 합니다. 예를 들어 백만 뷰 콘텐츠의 조회 수나 초기 바이러스의 전파 속도를 계산하기 위해서는, K 지점에 이를수록 증가율이 둔화하는 S자형 곰페르츠 방정식이 아니라, 상승 곡선으로 뻗어 나가는 무어의 법칙(Moore’s law)이 다시 필요해집니다.

현실적으로 지수함수적 그래프를 적용할만한 사례는 드물어서, 보통 가상의 상한선에 이르러 성장이 둔화되는 곰페르츠 방정식이나 로지스틱 회귀와 같은 모델이 사용됩니다. 반면 바이러스의 전파 속도나 유튜브 백만뷰 콘텐츠의 조회수를 계산하기 위해서는 다시금 상수 K가 없는 지수함수 모델이 필요합니다. 뭔가 계획하고 예측하는 것에 소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체감하게되는 근래의 상황은, 예측이라는 관찰자적이고 특권적인 위치로부터 박탈당하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상수 K가 없는 지수 함수의 세계는 그 무엇도 은유적으로 상상할 수 없는 세계입니다. 무엇도 은유적이지 않다는 것은, 매 순간 현실이 픽션을 초과하는, 가능성이 가능성으로만 남아있을 가능성의 회수를 뜻합니다. <while True: do /virga>는 땅에 닿기 전에 증발하는 적운인 미류운(virga)의 운동, 그리고 가속주의와 관련된 6편의 글을 실은 단행본 『K-OS』을 통해 이러한 속도의 감각이 불러일으키는 심상을 더듬어봅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자기 차례가 오기도 전에 먼저 내질러진 돌림 노래, 또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전에 시작되는 공명의 심상입니다. 결국 무한 루프를 중지하기 위해 손끝으로 내리쳐야만 하는 키보드 입력, 즉 지면이라는 인터페이스를 향하는 비가 아닌 다른 방식의 강수 형태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하는 첫 번째 이미지에 대한 설명)

왼쪽: 메타케틀(Metakettle)이라는 게임이 있습니다. 앤드류 쉬린(Andrew Shreen)이 2005년 케임브리지의 게임 제작 워크샵에서 ‘경찰(cop)’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만든 게임으로, 시위대를 무력 없이 진압하는 케틀링(kettleling)으로 포위되었을때 진행할 수 있는 게임으로 고안되었습니다. 누가 더 외부에 있는가를 겨룬다는 점에서 메타케틀 게임은 누가 더 바깥에서 보는가, 누가 더 멀리서 조망하는가를 겨루는 ‘관찰자 위치 겨루기’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현재의 상황은 혼돈과 무질서로 가득 차 있기에 한 치도 앞을 내다볼 수 없다고 말하면서 예측하는 사람을 비웃는 이조차도 이 메타케틀의 게임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케틀링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포위된 시위대는 물과 음식을 공급받지 못하고 화장실도 갈 수 없는 상황에 놓이기 때문에, 케틀링이 해제되면 시위 참여자들은 다시 결집하는 대신 뿔뿔이 흩어집니다. 이것이 케틀링의 전술입니다. 아무것도 빼앗지 않으면서 가장 중요한 것을 빼앗아가는 전술이지요.

오른쪽: 파형정형회로는 입력된 파형을 원하는 파형으로 바꾸어주는 회로입니다. 대표적인 파형정형회로인 슈미트 트리거(Schmitt Trigger)는 입력 전압이 일정한 값 이상으로 상승해야 높은 출력(high, 1)을 내보내고, 일정한 값 이하로 떨어지면 낮은 출력(low, 0)을 내보냅니다. 예를 들어 슈미트 트리거는 구형파(Sine wave)가 아닌 입력이 들어와도 high와 low만으로 구성된 구형파로 출력을 내보내는데 사용될 수 있습니다. 케틀링과 파형정형회로 들어온 것으로부터 어떤 성질을 제거하여 내보낸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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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 구재회, 최주원, 최희정, Angela

도움: 콩고기, 서울이노베이션팹랩

포스터 디자인: 주한별

후원: 서울문화재단